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트로 포로셴코 (문단 편집) == 성향 == >키이우와 드니프로에서 시위는 대체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대인 집단의 지지를 받았다. 마이단 광장에서 자위 대대를 조직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스라엘군의 재향군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키이우에서 자기 밑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형제"라고 불렀다고 기억한다. 1월 마이단에서 처음 발생한 사망자 두 명은 아르메니아계인 세르게이 니호얀과 벨라루스 국적인 미하일 지즈넵스키였다. 2월에 벌어진 저격병 학살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자체와 시위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우크라이나 동북단에 자리한 하르키우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쓰는 환경 운동가 예브헨 코틀례프도 있었다. 이 학살에서 무장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유대인 세 명이 살해됐는데, 그중 한 명은 붉은 군대 재향 군인이었다. 무슬림 난민 가정 출신으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이가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혁명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폴란드, 유대 문화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대통령 권한 대행과 임시 정부 성원들은 우파 민족주의자는커녕 대개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의 러시아어 사용자였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뽑힌 국회의장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출신의 침례교 목사였다. 이행기 동안 국방부, 내무부, 국가보안부 등이 러시아어 사용자들 손에 넘어갔다. 국방장관 직무 대행은 집시계였다. 내무장관은 아르메니아인과 러시아인의 피가 반반 섞인 사람이었다. 부총리 두 명 중 한 명은 유대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은 동남부주인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의 주지사 역시 유대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은 동남부주인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의 주지사 역시 유대인이었다. 2014년 봄 임시 정부 각료 열여덟 명 가운데 세 명이 민족주의 정당인 자유당 소속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더라도 이 정부는 우파 정부가 아니었다. > >쿠데타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행정부의 권한 축소를 요구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쿠데타를 벌이는 이들은 권력을 양도하기 위해 선거를 요구하는 법이 없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2014년 5월 2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크라이나 남부 출신의 중도파 러시아어 사용자인 페트로 포로셴코가 승리했다. 초콜릿 사업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당시 쿠데타 시도 같은 게 있었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해킹해서 극우파 정치인이 승리했다고 선언하려 한 러시아의 시도와 그 선언을 그대로 내보낸 러시아 방송의 발표였다. > >2014년 5월, 극우파 정치인 두 명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 각각 전체 투표의 1퍼센트도 얻지 못했다. 둘 다 유대교 정강을 내건 유대인 후보보다 더 적은 표를 얻었다. 승자인 포로셴코는 계속해서 총선을 요구했고, 9월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쿠데타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사태 진행과 정반대였고,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극우파의 인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우크라이나의 우파 정당, 즉 자유당과 준군사 집단 라이트섹터를 바탕으로 생겨난 신생 정당 어느 쪽도 의회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기준선인 5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유강은 옮김), 서울 : 부키, 2019. p.206~208 후임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중도주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젤렌스키나 포로셴코나 중도파 정치인들이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협력이 가능할 정도로 정치노선의 차이는 적다.[* 단적인 예로 포로셴코, 젤렌스키는 둘 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EU 가입을 지지할 정도로 친서방 노선을 주장한다. ][* 따지고보면 푸틴과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행한 이유들 중 하나도 우크라이나 정치가 친서방 우세의 구도로 굳어진 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선거로 친러시아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낮아지니, 아예 자기들이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장악해서 친러시아 괴뢰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2019년 대선 당시 포로셴코 대 젤렌스키의 대결도 '친러 대 반러'가 아니라 '부패 대 반부패'의 구도였고, 후자를 대표한 젤렌스키가 이긴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조선일보]]도 2014년 포로셴코가 당선될 당시에는 그를 중도주의 정치인이라 보도했을 정도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26/2014052602609.html|#]] 하지만 동유럽 정세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까지 이 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